한국과 캐나다 300㎞ 걷기 대장정을 마치고...
금년 4월 나는 가족, 친지들과 함께 한국 여행을 다녀왔다. 나는 현재 캐나다에 살고 있으며 내 인생의 대부분을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서부 해안에서 보냈다. 한국 여행은 나의 버킷리스트의 하나이다. 한국 여행의 목적지는 가평과 포천이다. 이 두 지역은 캐나다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 한국전 정전 70년이 지났지만 전쟁의 상처와 한국의 산야에 뿌려진 캐나다 젊은 병사들의 피는 오매불망 잊을 수가 없다.
캐나다에서 한국까지 「 300㎞ 걷기 대장정」. 내 여행은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랭리시에 위치한 가평석으로 건립한 캐나다군 한국전 참전기념비로 부터 시작되었다. 나를 포함한 5명의 우리 대원들은 캐나다 랭리에서 한국의 가평까지 항공구간을 제외한 300㎞를 10일 동안 육로를 통해서 도보로 돌파하는 것이다. 출발점인 밴쿠버의 랭리는 가평석 캐나다군 참전기념비가 있는 곳이고 목적지인 가평은 1951년 캐나다군이 가장 치열하게 싸워 승리한 가평전투의 현장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이 두 지역을 연결하는 것은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캐나다에서 한국까지 도보 행군은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아주 힘들고 독특한 모험이다. 사실 이번 도보행군은 내가 책에서 읽었고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한국이라는 곳을 한번 경험한 잊지 못 할 추억이 되었다.
금년 4월 14일 랭리에서 밴쿠버 공항까지 80㎞를 24시간 만에 돌파하고 항공기에 몸을 실었다. 한국에서의 220㎞ 걷기 대장정은 인천 공항에서 시작되었다. 4월 16일부터 우리는 할당된 거리를 도보로 행군하였다. 인천에서 서울까지 걷는 동안 많은 공원과 수로, 마천루의 아파트 단지를 지나쳤다. 서울을 벗어나 동진을 계속하자 풍광는 푸른 들판과 산림지대가 나타났다. 우리는 많은 언덕과 야산들을 넘었고 보행자 터널 들도 통과하였다. 우리의 걷기 대장정이 거듭 될수록 태양은 더욱 뜨거워졌고 아스팔트에 접하는 발바닥은 통증이 가중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결고 혼자가 아니었다. 도보행군을 계속하면서 길에서 만난 한국인들은 우리 단원들에게 다정하게 미소로 답하였고 때로는 멈춰서서 나에 말을 걸었다. 어디서 왔는냐? 그리고 어디로 가는냐?
출발 6일째 되던 4월 20일 가평 초입에서 대규모 가평군대표단(공무원, 재향군인회, 자유총연맹, 민주평통 단원)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가평에 입성하였다.. 가평군민들은 우리 대원들을 아주 친절하고 따듯하게 맞이해 주었는데 우리는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었다. 우리는 가평군민들과 곧 친숙하게 되었는데 300㎞ 걷기 대장정에 대해 웃으며 이야기하게 되었다. 우리가 지금까지 얼마나 걸었는지, 앞으로 얼마나 더 걸어야 하는지 이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따뜻한 격려와 단합된 팀워크가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우리 걷기대장정 대원들의 일부는 지치고 쳐져서 길게 꼬리를 물고 걷고 또 걸었다. 그러나 중도 포기는 없었다.
「 가평전투 72주년 기념 300㎞ 걷기 대장정」 의 대미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우리는 마침내 가평읍 중심부에 위치한 영연방 한국전참전기념비에 도착하였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서태원 가평군수로부터 열렬한 환영과 격려를 받았다.
우리의 300㎞ 걷기 대장정은 1951년 4월 가평의 한 능선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캐나다군 희생자들에게 바치는 추모행사의 하나로 기획 되었다. 가평전투는 캐나다군이 다섯배나 많은 적을 상대로 용감하게 싸워 승리한 캐나다군 역사에 가장 영광스러운 전투이며 한국과 캐나다 혈맹관계의 시초가 되었다. 그래서 가평에서 캐나다군의 희생과 유훈을 되새겨보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지난 4월의 「300㎞ 걷기대장정」 만났던 한국 국민들의 친절과 배려가 한국과 캐나다 혈맹의 밑거름이 되길 희망해본다.
가이블랙 (캐나다 군사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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